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23)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간직한 옛것들이 너무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다. 역사 깊은 유럽이나 이집트, 이탈리아를 가서 보면 옆으로 스치는 작은 건물, 보도의 돌까지 수백, 수천 년의 기록을 간직한 옛것들이다. 그 옛것에는 그 안에 고이 간직한 이야기가 있고 세월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고요가 함께하고 있다. 옛것은 추억과도 바로 연결된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옛것과 그 옛것을 통하여 내 과거를 다시 볼 수 있으며 지금을 성찰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난 집, 그곳에 내가 만들었던, 남아있는 흔적, 초등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자국, 그 큰방 문 보는 순간 수십 년을 뛰어넘어,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보는 모든 것이 수십 폭 병풍처럼 쭉쭉 풀어지면 옛 추억 속에 내가 웃고 있다.

매일 뛰어놀았던 볼바탕(천연 잔디가 깔린 냇가 운동장)에서는 또래들이 모여 새끼로 뭉쳐 만든 축구공을 맨발로 힘껏 질러댄다. 그 공이 굴러가서 골대 속으로 미끌려 들어가는 영상이 훤하다. 하늘에는 종다리가 우리가 놀고 있는 모습을 정답게 보면서 그 잊지 못할 노래로 흥을 돋운다. 농사일이 끝나 조금 여유를 갖는 우리 집 누렁이는 고삐 줄을 제 허리에 두르고 핑경소리를 경쾌하게 울리면서 풀 뜯기에 여념이 없다.

어찌 우리 집, 한 식구, 럭키(개 이름)의 신나는 뜀박질을 빼놓을 수 있으랴. 항상 우리가 가는 길을 먼저 알고 앞서니 뛰는 녀석을 뒤쫓다 보면 한참 익어가는 논밭의 눈 익은 곡식들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훌쩍 커버린 수수는 더 높게 자라 아래를 굽어보면서 자기 있음을 알린다.
 
이 모든 것들이 나름 있으므로 해서 의미를 갖고 그 존재로 내 추억을 만들어 왔다. 그런 정취가 사라져버린 들녘, 쓸쓸하고 허전하다. 내 살던 동네를 둘러보면서 옛날 눈에 익었던 모습을 어느 것 하나 찾을 수 없을 때 실망감, 그 마음을 아는 듯 내 놀이터였던 팽나무가 반갑게 맞는다. 같이 짝을 이루었던 느티나무는 흔적이 없고. 생물은 그렇다 해도 좀 더 오래 견딜 수 있는 유물들이야 어찌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지.

종로3가의 피막골 뒷골목, 50~60년 전으로 기억을 돌려보면 그 익숙한 해장국집은 흔적이 없고 거대한 빌딩이 왜소한 인간의 접근을 막는다. 탑골공원의 탑에서 겨우 오랜 눈 맞춤을 하는데 그 주위가 영 낯설다. 그래 변하고 변해야 하지만 역사에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정취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영천, 내가 서울 유학 와서 처음 짐을 풀었던 곳, 반세기도 훨씬 넘어 한번 기억을 되살리며 찾아갔으나 천지개벽, 아무것도 나를 반기지 않는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눈 들어 보니 뒤편 인왕산의 걸쳐있는 바위들이 나 있다고 인사한다. 반갑고 기쁘다. 인사할 대상을 발견했으나 바위 사이에서 흘러 나는 우물은 아마도 아파트 기초 공사 때 저 밑으로 흔적을 감췄겠지. 어느 것 하나 역사를 일러줄 흔적이 없으니 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끄나풀이 없네.

그래 이제 개방된 서대문 형무소, 높은 담벼락이 일반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그 음침함을 벗고 관광의 대상이 된 것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높은 담벼락, 망루가 눈에 선한데 내 영상 속에만 존재한다. 원래 터에서 개발의 미명으로 원래 자리에서 밀려난 독립문은 그래도 제 모습을 가지고 있어 조금 아쉬움을 덜어준다.

우리는 왜 옛것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부숴버리고 흔적을 없애버리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개발은 하되 옛것을 보존할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은 없는 것인가. 후손에게 시멘트 덩어리, 아파트만을 넘겨주어 살벌한 삶을 살도록 할 것인가. 대학 시절, 3~4년을 살았던 응봉동 판잣집 촌, 그 골목이 눈에 선한데 이제 거대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오래된 기억 속에 좁은 공터에는 찔레꽃이 판잣집 집성촌에 어울리지 않게 고운 꽃에, 매혹적인 향기는 오래전 바람에 실려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서울 몇 곳, 고궁은 보존되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중앙청 앞 6조 거리에 옛 모습을 찾기 위해 발굴 작업을 했는데 나온 유물을 수집하여 겨우 옛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지. 그래도 진한 아쉬움은 남는다.

형상이 없어졌으니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보고 느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 사람의 생이 다함과 함께 이야기도 결국 멈춰버리게 된다. 문화민족의 긍지는 역사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역사는 그때 가지고 있었던 물질적 형상과 정신 산물에 의존한다. 이제라도 옛것의 소중함을 공유하고 후손에게 물려 줄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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