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20)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낯익음에서 낯섦,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아가는 행동이
삶을 더 젊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익숙함보다는 낯섦을 찾아가는
경험을 
해야겠다

살다 보면 주위 환경이나 만나는 사람에 따라 익숙하다고 느끼거나 새롭거나 잘 알지 못하는 경우 낯섦을 느낀다. 익숙함은 말 그대로 내가 잘 알고 친근하게 느끼는 상태이고 낯섦은 처음 만나거나 만난 적이 없는 대상, 혹은 익숙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자주 등산한 산길은 익숙하게 길을 찾아가나 처음 길은 낯섦으로 헤매거나 길을 잘못 들을 수도 있다. 보통 우리는 낯섦보다는 익숙함의 선택한다. 
 
내가 아침 걸어서 출근하는 길도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거의 같은 길을 선택한다. 처음 몇 번은 일부러 이 길 저 길 선택하여 걸어봤고 그때마다 낯섦을 느끼곤 했다. 한 길을 선택하여 걷다 보면 낯익고 익숙해서 주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걸으면서 다음 골목에 무엇이 있고 돌아서면 미장원, 그다음은 맥줏집, 가만히 눈에 그려도 다음 비칠 광경이 떠오른다. 이렇게 몇 년을 무심히, 그리고 그 낯익음에 묻혀 한 길을 다녔고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어느 날 그 낯익은 오던 길을 거꾸로 가보기로 하였다. 전혀 다름이 없는 같은 길인데 반대로 갈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고 낯설다. 눈에 익었던 가게의 간판도 방향이 반대이니 다르게 보이고 내가 지나다녔던 길이 아닌 것 같이 느낀다. 새롭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미쳐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보인다. 환경이 바뀌니 새로운 광경이 눈에 비친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삶도 비슷한 것 아닐까 여겨진다. 어느 한 날, 한순간. 이전에 내가 겪어본 광경이 있는가. 한순간, 한순간이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결코 꼭 같지 않은 연속되는 장면일 뿐이다. 어찌 어제 것이 오늘과 꼭 같을 수가 있는가. 어제 봤던 내 사무실에 키우고 있는 일일초는 앞 꽃이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고 그 밑에 준비했던 꽃망울이 새 꽃잎을 삐죽이 내밀고 있다. 고무나무는 보이지 않던 색깔이 노랗게 변한 잎사귀들이 몇 개씩 보인다. 하나하나 따내서 쓰레기통으로 보내는데 이 모든 것이 어제가 아닌 오늘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어찌 어제 것이 오늘과 같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 매일 출근하는 내 사무실이라 하더라도 어제가 아닌 오늘의 지금을 새롭게 느끼면서 산다.
 
사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변했고, 그 변한 것은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친지나 가족들, 어제 만났고 또 오늘 다시 본다 한들 어제의 그들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같다고 느끼는 것 아닌가. 몇 년 만에 만났던 친구가 더 나이 들어 보이고 머리는 반백발로 변한 것도 시간이 쌓이면서 오는 변화, 단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조금조금, 달라짐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침의 마술이 아닐까 여겨진다. 변화가 미미한 것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친숙하다고 여기나 엄밀히 말하면 어제와 다른 개체를 보고 같다고 느낄 뿐이다. 그 변화가 큰 경우에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 인식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풍경과 환경은 우리가 익숙하고 평범하게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 낯설게 느끼나 더 미세하게 관찰하면 내 주위, 지금 접하고 있는 모든 것은 어제 것이 아니고 오늘 새로 태어나고 지금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차이를 못 느끼니 낯익다고 느낄 뿐이다. 
 
매일 다녔던 길거리에 간판이 새로 바뀌었다. 아마도 주인이 달라진 모양이다. 다른 색깔로 인테리어를 하고 깨끗하게 단장하니 그전에 봤던 가계와는 크게 다르게 느낀다. 익숙했던, 전에 있던 모습과는 별다르게 새로움을 주고 낯익지 않은 감정이 인다. 이것도 몇 번 보고 익히면 낯섦이 낯익음으로 변하겠지.
 
익숙함과 낯익음은 현재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있다. 그러나 이 편안함은 변화를 바라지 않는, 안주하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철저하게 낯익음을 떨쳐 버리고 새로움, 낯섦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다. 어느 것 하나 낯익은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새롭고 눈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새로운 경험도 낯익은 것이 아닌 낯섦에서 오는 충격, 감각을 느끼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낯섦보다는 낯익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 그래서 오래된 친구가 좋다고 하는데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는 없다. 젊은이들이 새로움, 다른 경험이나 모험을 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낯익음에서 낯섦,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아가는 행동이 삶을 더 젊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여겨진다.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익숙함보다는 낯섦을 찾아가는 경험을 해야겠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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