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26)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일반인의 경우 경험하지 않는 것을 실감 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굶어본 사람만이 굶는 아픔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기부 활동도 젊은 시절 어렵게 살아본 사람들의 참여율이 높다고 한다. 자기가 체험한 그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고 권유한다. 그래야 폭넓게 세상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성상 편한 길과 힘든 길이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지금 당장 쉽고 편안한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안다. 건강이 함께하는 젊은 사람의 경우 아프다는 생각이 어떤 것인지 언뜻 마음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그 상태를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휠체어를 타보지 않은 사람이 몸으로 느끼는 그 고통과 불편함을 어찌 모두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앞을 못 보거나 청각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느끼는 불편함과 좌절감은 그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들 어려움이 이해의 폭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정상인의 감정을 벗어난 때일 것이다.

불편해 봐야 편안함의 가치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다. 비교의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추위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적도 근방의 삶에서 과연 추위가 무엇이며 어떤 감정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북극지방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더위와 뜨거운 바람이 어떤 감정일 것인가를 과연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동남아 사람들이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눈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진이나 영화 등에서 충분히 눈의 모습을 감상할 수는 있으나 내가 내 몸으로 체험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육체나 정신적으로 경험해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이성이나 감성에 의존한 느낌일 뿐이다.

군대 생활을 같이했던 동료의 총상에 의한 죽음, 전우의 시신 옆에서 하루 저녁을 같이 지낸 경험은 죽음이 바로 내 옆에 있구나 하는 감정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그 이후 스스로 죽음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하긴 죽음을 경험하고 그 경험담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겠지만, 죽음의 근접거리에서 경험한 경우는 마음속 깊이 실감 나게 뇌리에 남는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여백을 주기도 한다. 

겨울만 되면 뒤꿈치가 딱딱해지면서 쩍쩍 갈라진다. 생살에 틈새가 생기니 걸을 때 통증은 참기가 꽤 힘들다. 연고를 바르고 테이프로 동여매어도 일시 처방, 날씨가 따뜻해져야 저 스스로 원상을 찾아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 발뒤꿈치 통증을 어찌 설명해야 하나. 걸을 때마다 전달되는 아픔은 걸음걸이까지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종아리, 심지어 척추까지 영향을 준다. 이런 통증을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전문의가 쓴 죽음 공부에서 설명하는 각종 암에 의한 통증, 그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데 과연 그 의사는 자기가 겪어본 통증인가. 아니다. 환자를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불편함과 고통, 통증은 나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는 한 끝까지 그 진수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수련에 의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혜안을 통하거나 신적 능력을 갖추고 헤아려 그 해결 방법, 또는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으나 그 경지에 이르지 않고 이해하는 것은 오랜 수련과 정신적 영감에 의해서 간접경험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생활을 하면서 매 순간 맞아들이는 모든 현상은 결코 전에 경험해 본 것과 동일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항상 새롭고 처음인 것의 연속이긴 하다. 그것이 변화를 거듭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같은 여정, 같은 일을 꼭 같이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경험은 모든 인간에게 자기에게만 유일하게 주어진 가치다. 생각의 자취인 글을 통하거나 행동이나 말을 매체로 하여 다른 사람의 경험과 고통, 그리고 아픔을 공유할 기회를 얻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전이다. 내가 직접 당하거나 경험하지 않았다 해도 그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생각하는 동물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이다. 매일 겪는 불편이나 여러 고통은 인간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구성요소이고 극복해 나가면서 새로움을 찾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시간이 주는 연륜이기도 하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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