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19)

생각은 무한 자유로우며 완전히 개인적인 범주에 드나 그 생각을 실현할 경우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이 지구에 생을 같이 하고 있는 생명체들, 넓게 생각하면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이 행성에 동식물이 발현한 뿌리는 같다고는 하나 동물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있으나 식물은 한 곳에 붙박이로 있으면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럼 이들 생명체에는 생각이 있을까. 확실하게 동물, 하등이나 고등 동물 모두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고 여기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자기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그 상황을 피하려고 본능적 행동을 하며 먹이가 있을 때 그 대상을 포획하는 재빠른 행동을 한다. 자의든 타의든 생각이 없이 이런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본능이라고는 하나 그 본능도 자기의 생각 범위에 들어간다고 여겨진다.
그럼 식물은 과연 생각이 있을까. 이들도 생명체의 범주에 드나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기의 의지를 나타내거나 생명을 보호하려는 본능적 의지는 있지 않을까 한다. 몇몇 연구자에 의하면 식물들도 자기방어를 위한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나무꾼이 숲에 들어와서 나무 하나를 자르면 옆 나무에 큰 반응이 감지되고 과수원에서도 음악을 틀어주면 생장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런 현상으로 식물이 생각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으나 어떤 형태로든 반응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 아닌가 여긴다. 이 분야 지식이 짧아 더 깊이 논할 수는 없으나 생명체로서 최소한의 자기방어, 생명 유지를 위한 능력은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고나 생각은 아니라도 생명을 지키려는 생명의 본능에 관계될 것이라 여겨진다. 동물은 식물과 다르게 자기 방어능력이 있으며 생존을 위한 여러 의도적인 움직임을 한다. 이런 의지에 따라서 행동과 사고의 영역 달라진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생각은 사전적으로 “마음속으로 헤아리거나 판단하거나 인식하는 일, 또는 그 작용”이라고 정의하는데 생각을 마음속 작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마음과 생각은 우리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고 지능의 수준에 따라 생각과 마음은 달리 나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생각은 가끔 아이디어라고 달리 말하기도 하나 그 근원을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생각은 인간이기에 가장 기본적이고 개인적인 정신영역에 들어가며 내 생각의 자유는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다른 사람의 그것을 억제하거나 비틀어 다르게 방향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은 나만의 무한한 자유, 정신영역이며 결코 구속할 수 없는 독자적 기능이 있다. 생각은 아이디어를 품고 있으며 우리 인간 문화나 문명의 시발점은 생각, 즉 아이디어가 출발점이 되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문화, 문명이 되었다.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어떤 공식이나 형식이 없이 우리 뇌에서 떠오르는, 실로 자유로운 영혼의 산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가끔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내 안에 갖고 있는 생각으로 빠져들어 그 생각에서 다시 생각하는 상태다. 이 과정을 거쳐 새로움을 창조할 계기를 마련하고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를 모으기도 한다. 생각이 다름에 따라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 특히 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의 생각은 많은 사람에게 크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 생각에 따라 한 민족의 명암이 갈리는 경우를 인류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다. 개인의 경우도 순간순간의 생각에 따라 행동의 방향이 달라지고, 행한 결과도 같지 않게 된다. 또한, 생각 나름에 따라 우리의 행ㆍ불행도 따라온다. 비슷한 예로 올림픽 경기에서 1등은 무한한 기쁨에 즐거워할 수 있으나 2등은 1등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2등의 영광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3등의 경우 메달 권에 들었다는 안도감에 기쁨이 커진다고 한다. 즉 생각 나름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상황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과 불행도 생각 나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우리 옛말은 정확히 핵심을 내보이고 있다.
생활하면서 꼭 같은 상황에서 만족과 불만족의 감정이 달라짐을 느끼곤 한다. 그만하면 됐다 하고 스스로 만족하는가 하면 더 얻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불만을 표하기도 하나 그 상황은 이에 끝났고 다시 변형할 수 없는 처지라면 내 마음을 긍정의 쪽으로 돌리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는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오만 생각이 왔다가 스러지는데 이 생각의 주체는 나이고 내 의지에 의해서 이들 생각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으리라는 것에 안도감이 든다. 생각은 무한 자유로우며 완전히 개인적인 범주에 드나 그 생각을 실현할 경우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근래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로 주위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관련기사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