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상태에서만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이해하고
고독의 경지에서만 예술 작품의 진수와 접할 수 있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71)

혼자 태어나서 같이 가는 사람 없이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인류 출현 이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자연 섭리다. 이 순리로 주어지는 과정에서 태생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은 인간이기에 느끼는 아주 일반적인 감정이다.

이 생을 살아가면서 문뜩문뜩 외롭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초를 다투어 일에 매여 하루를 보내는 재벌 총수들, 국가 대소사를 총괄해야 하는 최고위직 그리고 학문 분야에서 자기 삶의 시간을 몽땅 불어넣어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들, 그들도 잠시 짬이 있을 때 내 주위에, 내 곁에 마음을 나눔 대상이 없다는 것에 어찌 외로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 강도는 더 심할 것이다. 

바쁨은 잠깐 외로움을 잊게 해주나 고독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로움은 타의이나 고독은 자의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외로움은 육체의 외부에서 다시 느끼는 감정이고, 고독은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정신 상태이다. 그러나 외로움과는 다르게 고독은 둘이 아닌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고독으로 몰입하면 그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 희열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정신영역의 새로운 경지를 경험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또한, 외로움은 혼자라는 쓸쓸함이 묻어 있지만, 고독은 혼자이면서 풍성하고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준다.

여러 종교에서 기도하고 참선하며 명상하는 것은 결코 둘이서 할 수 없는, 고독의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지를 경험하기 위함이다. 명상, 참선은 대중과 함께할 수는 있으나 결코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자기만의 정신세계에 몰입하는 과정이다. 이런 철저히 혼자만의 경지에 듦으로서 자신의 내면을 굽어보고 인생을 더 깊이 멀리서 관조하고 이생이 아닌 영원의 흐름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고독은 마음의 평정과 평온을 선사하며 나를 넘어선 무한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혼이 투영된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가끔 무(無)의 경지에 들어 그 작자가 쏟아부은 혼의 영역에 내가 빨려드는 경험을 한다. 이는 고독에서 오는 산물이며 오롯이 나의 마음속, 고독만이 이를 허용한다. 고독의 상태에서만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이해하고 동일시하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이를 즐기며 환희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고독의 경지에서만 예술 작품의 진수와 접할 수 있다. 신라인의 정신, 진수를 응결시킨 반가사유상은 완전 고독에서만 그 정신을 공유할 수 있다. 고독에서는 타인의 통제, 시선, 평가에서 벗어난다. 느긋하게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을 내면에 갖추게 된다. 이런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나 자신과 큰 세상, 우주를 연결하는 끈을 잡을 수 있다. 불교 스님들의 좌전이나 명상은 완전한 고독의 상태를 유지하며 참 나를 발견하는 수도의 한 과정이며, 이를 통하여 내가 부처임을 알아내는 수도의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외로움은 우리가 자신, 타인, 자연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때 나에게 오는 내적 통증의 하나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런 고통은 내가 혼자 있을 때 더 심하게 다가온다.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누구도 곁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삶, 어찌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그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의 자세는 자신의 수련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음을 성현들의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어느 신참 정치인의 명언,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이다.” 이 말을 외로움과 고독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외로움은 마음에서 오는 반응이나 그 외로움을 고독의 경지, 나만의 정신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내 의지와 용기라고 가늠이 된다. 즉 여기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가 적용될 것 같구나. 어찌 외로움의 감정으로 나를 괴롭히고 소외되는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 외로움을 내가 나를 관찰하고 떨어져 바라볼 기회, 즉 고독의 경지로 유도하는 것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외로움을 택할 것인가 이를 고독으로 전환하여 더 깊은 정신영역을 끌어올릴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진정한 예술가나 문학자들은 결코 외로움을 느낄 기회가 없다. 창작활동에서 혼자만의 영역에 들어 고독한 상태에서 자연과 우주와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타인의 조력이 전연 필요 없는 나만의 정신영역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어도 전면 외롭지 않은, 그 속에서 풍요와 기쁨을 창조하는 고독의 상태, 그 경지에 이르는 것은 각자의 정신수양으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특전이고 큰 혜택이다. 이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가끔은 잠간 멈춰 진정 나와의 대화, 고독의 순간을 만들고 이를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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