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은 육체의 범위를 넘어 마음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그것을 즐거움이나 고통으로 바꿔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그것은 오직 내 생각 나름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75)

유한한 생명체의 숙명으로 시간의 흐름을 내면에 축적하는 과정이 늙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늙어감은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자연 섭리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늙음은 맞는 사람들만의 특권이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영역이다. 젊은이에게 “너 늙어봤어?” 하고 물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육체의 모든 조직이 달라지고 행동이 굼떠지는 것, 그것이 어때서, 보기 좋지 않다고. 아니 아침 해가 찬란하게 떠서 구름에 가리면서도 결국 서쪽 하늘로 사라지는 것과 같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무엇으로 거역할 것인가. 이런 경험을 그 누군들 미리 해본 사람이 있는가.
늙음은 생의 마무리를 옆에 두고 느끼는데 그런 생각을 젊은이 누가 한 번이라고 몸으로 느껴 봤는가. 늙어 감을 느끼고 알아가는 것은 삶이라고 하는 인간에게만 유별나게, 누구와도 같지 않은 선물을 준 것은 어찌 보면 위대한 신의 배려이며 예술이다. 누구도 닮지 않은 유일한, 일생 한 번 만드는 절품이다. 시간은 계속하여 그 시간을 누리는 사람에게 생각의 축적, 지혜를 갖도록 해주고 사람만이 세월 속에서 쌓아갈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이고 이 자연이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그리고 쌓아진 지혜는 인간을 서로 깊이 이해하고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조건과 그 장단점을 깊이 이해하면서 사람의 됨됨을 알아차리는 혜안을 갖춰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늙음의 혜택은 마음의 눈을 갖고 생각이 넓어지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인내심을 발휘하는 바탕을 마련하기도 하며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힘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을 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의미와 존엄성을 서서히, 그리고 더 깊이 인식하고 그 존귀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생각은 범위가 넓어져 주위에 펼쳐져 있는 모든 자연의 신비로움이 눈에 와 닿는다. 어제 보았던 뒷산의 모습이 달리 보이고 여행할 때 차창에 스치는 풍경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늙어가면서 자연히 습득된다. 잊혔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의 말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전화번호를 찾는다. 젊음의 바쁨에서 이제는 한두 발 벗어나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뚱맞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느껴지고 어쩔 땐 아쉬움으로, 지나감을 막아보려는 만용을 부려보지만 어쩌랴. 보약과 의료기술로 잠깐 시간을 거슬리기는 하지만 흐르는 시간에 걸맞은 변화를 막을 수는 있을 것인가. 잠깐의 멈춤, 위안은 되려는지 모르지만 큰 흐름을 어떻게 막겠는가. 시냇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아 여름의 흔적인 흘러가는 낙엽에 나를 실어보면 인생을 아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념에 젖는다. 그렇다. 물의 흐름은 자연 그 자체이고 나도 이 자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세먼지, 그 뜻이 어찌 이 우주의 흐름에서 예의가 될 것인가.
이제는 근본으로 돌아가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와 나 혼자로 독립하여 살아있다고 여겨지나 어찌 한순간도 많은 사람의 보살핌 없이 이 지금의 내가 있겠는가. 나이 먹어가면서 나에게 온갖 온정을 베풀어 주었던 모든 사람, 내 주위, 자연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문득 일고 있다. 그들의 보살핌,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생각하는 내가 이 시간을 맞고 있겠는가. 나를 나다운 인간으로 태어남, 그 자체가 축복이고 그 존엄성을 내가 받았다는 것에 깊은 안도감을 느끼는 시기가 늙어 감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포용하고 이해하면서 따뜻함을 나눠주려는 마음가짐, 그래서 나이 먹어감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식, 운동, 보약을 먹으며 건강 생각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누구나 거쳐 왔던 길을 가면서 이 세상을 하직한다.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으나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야 어찌 죽음이 있을 것인가. 60세, 70세가 넘어가면 외양에 나타난 특징과는 다르게 내면의 나, 그리고 주위 환경은 조금의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나 너무나 비슷하게 살아감과 여태껏 나에게 봉사해왔던 육체의 어느 부분이 내 의사와 어울리지 않게 작동하고 감각이 둔해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해 저물어가는 석양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마음 편히 변화를 스스럼없이 안을 수 있다.
늙음은 육체의 범위를 넘어 마음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것을 즐거움이나 고통으로 바꿔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그것은 오직 내 생각 나름이다. 늦가을 야산 오솔길에 피어있는 들국화를 보면서 눈으로 즐기고 그 그윽한 향으로 또 다른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오직 내 마음에 따른다. 늙음의 특권은 서두르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것을 흠뻑 느끼고 그것을 나에게 주어진 큰 혜택이라고 여기는 마음가짐을 훈련하는 시기이다. 주어졌던 생에 만족하고 흡족하게 여기면서 마감하는 것, 그것이 남아있는 과제이고 마음의 자세다. 더 나아가 아팠던 상처의 흔적에서 향이 나도록 노력하는 마음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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