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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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 가족 등 여러 인연으로 생의 마지막을 같이하는 영결식장에 갈 때마다 고인의 영정 사진을 제일 처음 대한다. 그 모습에서 살아계실 때 모습을 과거의 모습으로 접하면서 명복을 빈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우리의 예법에 따라 향을 피우고 예에 따라 절을 하거나 묵념으로 대신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 와서 가족, 친지들과의 경건한 마지막 이별 장소다. 

이때 영결식장에서 가족이 신경 쓰이는 것이 영정 사진이라고 들었다. 평소 준비해 놓았다면 문제가 없으나 갑자기 변을 당했을 경우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 시간은 촉박한데 집안 여기저기 뒤져 있을 만한 곳에서 겨우 찾은 낡은 사진 한 장, 그것으로 사진을 급조하다 보면 어색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하며 자손이 걱정하지 않게 날을 잡아 영정 사진을 만들었다. 물론 아내와 같이 사진관에 들러 지금의 모습을 담아 사진틀 속에 소박한 영정 사진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후손이나 남은 친지들에게 최소한의 어려움을 끼치지 않기 위한 배려가 영정 사진 준비이고 장지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이 영정 사진은 생을 마감할 때보다 젊었을 것이지만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이해해줄 것이라 여기고, 만들어진 영정 사진을 거실 잘 보이는 곳에 잘 모셔 놓고 있다. 가끔은 그 사진을 보면서 “잘 계셨습니까?” 하고 인사하면서 “언제 자리를 옮기실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나 대답 없이 묵묵부답, 너 스스로가 그 대답을 알리라 생각하나 보다. 아마도 맨 처음 장소를 옮기는 것은 내 장례식장이 되겠지. 찍어놓은 내 영정 사진을 보면 근엄하지는 않으나 어찌 즐기는 표정은 아닌 것 같다. 몇 모습을 시도해봤으나 지금 만들어진 것이 무난하였다.
 
가끔 장례식장에서 웃는 모습의 영정 사진을 보면 슬픔이 깃든 장소에서 근엄한 모습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 와닿는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평소 친분이 있던 분들과 이별을 할 때 웃는 모습을 뒤에 남기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덜 주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 치루는 옛 장례행사에서는 가족들의 비통과 슬픔이 쌓여 울음이 그치지 않았는데 근래 장례식장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물론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의 한 장소라는 이유도 있으나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입관 때 직계 가족의 슬픈 울음은 공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모시고 있었던 상사 한 분은 이례적인 자기 장례식장을 만들겠다고 공언하셨다. 자기 장례식장에 오실 분들에게 보낼 인사말을 녹음해 놓겠다는 뜻이었다. 그 내용인 즉 “이렇게 제 장례식장에 찾아오셔서 조의를 표하는 것에 감사드리고 여기에 오신 여러분은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고 여러분들이 있어서 내 생이 즐거웠으며 무난히 어려움을 헤쳐 나왔고 이제 마무리를 잘하고 갑니다.” 그리고 첨언하여 “이 자리에서 저와 마지막 인사를 기쁜 마음으로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이다. 더욱 아찔한 부언은 “아니 벌써 자리를 뜨려는가? 조금 더 있어도 좋을 텐데, 바쁜 모양이지.” 자, 이런 말을 돌아가신 맹인에게서 녹음된 음성으로 들었을 때 심정은 어떨까? 

그 상사분에게 말리기는 했지만 지금 생존해 계시니 그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지키시려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문상한 어느 장례식장에서도 고인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하긴 유명인사의 추도식에서는 고인이 했던 과거 강연이나 인상적인 연설을 들려주는 예는 있고 그 말을 듣고 추억에 젖으면서 공감하고 지금의 사정을 되돌려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삶이기는 하지만 탄생과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이 인생에서 자기만을 위한 가장 큰 행사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 행사 중 나와 직접 관계된 것은 결혼식 하나이고 태어남은 내 의지가 아니고 가족의 잔치였으며 장례식은 나 아닌 내 가족이나 남의 손에 의해서 치러지는 행사다. 생을 마감한 처지에서 내 장례식을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후손이나 남은 친지들에게 최소한의 어려움을 끼치지 않기 위한 배려가 영정 사진 준비이고 장지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화장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는, 산골이라는 경우도 있으나 그러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이 세상에 왔다 간 자그마한 흔적을 남길 분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분묘 장소를 마련하였다.
 
여하튼 영정 사진을 만들어 놓고 눈에 띌 때마다 마주 보면서 인사하고 살아있는 오늘, 더 알차게 보람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별도의 장례식장용 내 녹음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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