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63)

책과 더불어 살아 온 지 근 70년이 되나 보다. 초등학교에서 “영이야 철수야 함께 놀자”라는 글이 쓰여 있는 교과서로부터 시작하였으니.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시용 책들은 물론이고 전공 분야에 들어서서는 수많은 저서와 다양한 분야의 관련 서적을 옆에 두고 읽고 또 읽었다. 더욱 새로 나온 잡지들은 시간이 닿는 대로 마음에 담고 책장에 쌓아 놓았다. 은퇴한다고 연구실을 정리하려니 앞뒤, 양옆 벽에 가득 쌓인 책의 처분이 큰 짐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대학 도서관에서 책 기증을 환영했는데 넘쳐나는 양을 담당하지 못하여 정중히 거절한다. 그냥 파지로 버리려니 한 권, 한 권 들춰보다 지난 기억이 머무르며 책이 나에게 안쓰러운 듯 말한다. “나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주인과 더 오래 있고 싶고 그 따뜻한 눈과 눈길을 마주하고 싶어요”. 그렇지, 책을 구입할 때마다 필요가 있었고 비록 전부를 읽지는 못했지만, 듬성듬성 필요한 부분을 꺼내 내 지식창고 한편에 쌓아 놓았고 중요한 부분은 밑줄을 그어놓았지. 이들 책과 이별하려니 차마 손길을 놓기가 어려웠다.
그때 마침 공기관에 근무하는 제자가 자기 연구소에 책 기증을 희망하였다. 참으로 구세주 같은 제안, 바로 작은 트럭으로 가득 한 차, 조금 남은 것은 제자의 차 속, 그래서 그 연구소에는 갑자기 도서실 하나가 생겼고, 나도 떠나보낸 내 분신들을 가끔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떠나보낸 후 그래도 같은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그 책, 그 책의 내용을 꼭 봐야 할 때가 생긴다. 그럼 기증한 연구소로 달려가 뒤적거려 손때 묻은 책을 더듬어 찾아 필요한 부분을 읽고 복사하여 간직하곤 하였다. 어떤 책에는 붉은색으로 밑줄을 그어놓았는데 당시에는 꼭 필요한 내용이었나 보다. 지금도 견출지가 붙어있는 부분은 들춰보면 붙일 때 필요성을 다시 느끼는 듯하여 감회가 새롭다.
완전히 하던 일을 단절하지 못하고 평생 해봤던 일을 잇기 위하여 자그마한 개인 사무실을 냈고 그 공간에 내가 앞으로 필요하리라 여겼던 책을 보관하고 틈틈이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 오는 잡지, 통계서 그리고 내가 필요하리라 여겨 사놓은 전문서적, 이들이 다시 모이니 작은 공간의 양 벽이 가득 차고 있다. 날을 잡아 필요성이 떨어진 낡은 정보를 담은 책과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녀석들을 파지로 버리는데 이 또한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처분하려 내놓고 보면 언제 이들이 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무르면 선뜻 내놓기가 망설여진다.
나 자신도 매년 1~2권의 책을 저술하는데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데는 머리를 쥐어짜는 숙고의 시간을 포함하며 최소한 1~2년이 소요되고 다시 편집, 교열하는데 몇 달은 족히 투자해야 아쉽지 않은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온다. 다른 분이 쓴 책들도 모두 이런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세상에 얼굴을 내놓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볍게 이들을 외면해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쩌랴. 작은 방이 계속 책으로 쌓이고 책장을 넘어 바닥까지 점점 그 범위 넓혀가고 있으니.
요사이 출판사들은 비명이다. 책이 팔리지 않아 한숨을 쉬는 곳이 늘고 있다. 더욱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는 것은 전자책과 핸드폰이다. 손쉽게 아무 데서나 손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별도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니 어찌 젊은이들이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하거나 책 사는데 별도로 책값을 지불하겠는가. 이 시대의 큰 흐름이니 이를 탓하자니 나만 뒤떨어진 꼰대소리를 들을 것 같고 또한 실효도 없으니 그냥 불편한 심정을 안으로 삭이고 있다. 그래도 나는 계속하여 종이책으로 읽기를 고집할 것이고 국내 외 잡지를 구매하여 읽을 계획이다. 신문에 소개되는 일반 수필집이나 교양서는 메모해 놓고 한 달이면 1∼2권씩 사서 새로운 세계를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전공 분야의 영역에서 비켜나 이제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평소 마음에 두고 있었던 고전도 다시 접해보면서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성현의 말씀이 오롯이 담겨있는 책에서 진리의 징수를 느껴보기도 한다. 아무리 세대가 변한다 해도 지식과 지혜의 보고인 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종이 위 활자로 되었건 컴퓨터나 핸드폰의 화면이 되었건. 그래도 내 경우 친숙하지 않은 전자기구의 자판보다는 독특한 냄새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종이책에 더 애착이 간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들리는 상쾌하고 익숙한 소리, 그러면서 글을 통한 저자와의 깊은 교감, 그러다 잠깐 잊어버린 넘긴 장을 다시 뒤져보는 여유, 그래서 종이책이 더 좋다. 또한, 종이에서 느끼는 친숙한 촉감, 아마도 책이 계속 쌓여도 또 다른 책을 사고, 한쪽에 쌓아 놓을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여유가 있고 내 머릿속 빈터가 채워질 때까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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