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86)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우리는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생각할 때 함께하신 부모님을 연상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그 정경을 마음에 담고 있을 것이다. 대도시, 성냥갑 같은 아파트 생활이 아닌, 시골집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우 자기가 어려서 자란 집을 어찌 깊은 기억의 밑바닥에 간직 아니 할 수가 있겠는가. 내 경우도 전형적인 농촌마을, 수백 년 조상들이 살아온 황토로 바른 벽 집에 짚으로 이엉을 인 초가집에서 살았다. 무쇠 솥 두 개를 걸어 놓고 밥과 국을 끓이는 큰 부엌(정지)에는 항상 짚단이나 솔가지 등 밥 짓고 온돌방 데우는 땔감이 그득하였다. 한겨울 불을 땐 온돌방 아랫목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껴본 사람만이 한옥 집, 구름장의 온기를 잊지 못할 따스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겨울을 지낼 때 항상 아랫목에 요를 깔아 놓고 자식들의 학교에 갔다 돌아와 느끼는 추위를 쫓아 내주었다. 그 따뜻한 아랫목은 용도가 많았다.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님이나 형님들의 밥을 놋쇠 밥그릇에 복집개를 덮어 묻어놓아 온기를 지키는가하면 청국장 단지는 아랫목 차지이고 명절에 사용할 가용 주를 담근 술독은 아랫목에 모셔놓고 관리하였다. 황토를 바른 벽에는 신문지나 한지를 발라 외풍을 막고 흙의 맨살을 덮었으나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부터는 색깔 있는 벽지가 생산, 보급되어 드디어 우리 방도 색색으로 호사를 하게 되었다. 벽지는 두루마리가 아니라 지금의 전지 크기였다.

보통 큰방, 작은 방에 붙어있는 광은 음식 보관소이면서 장을 들여놓아 형제자매들의 옷가지를 보관하였다. 이 광에 음식이 있다 보니 그 많던 쥐들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저녁에는 가끔 몰래 들어온 쥐 잡이를 하느라 수전을 떨기도 하였다. 이런 작업은 자매보다는 우리 남자애들의 몫이었고 잘 몰면 한두 마리를 포획하여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다. 형제자매가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였으니, 아기도 각방을 쓰는 지금의 세대에 비하여 훨씬 더 끈끈한 정이 깃들지 않나 생각이 든다.

초가집은 매년 한 번씩 가을 추수가 끝난 다음 볏짚으로 이영을 엮어 초가지붕을 교체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어야 겨울맞이가 끝난다. 볏짚을 한줌씩 이어서 이영을 엮는 작업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고 여겨진다. 이영은 물론이지만 용마랍을 엮는 것은 볏짚으로 어떻게 그런 매끄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지붕을 볏짚만으로 이어놓은 모양은 정답고 포근하며 친근하다. 살갑게 느끼는 연주황색의 지붕은 농촌 마을의 따뜻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특색을 매체가 되고 있다. 짚으로 이은 지붕은 겨울 참새들의 바람을 막아주는 보금자리가 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들짐승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금도 내가 생활했던 고향집, 초가집을 머리에 떠올리면 아늑하고 따뜻함이 가슴에 오롯이 스며든다. 이제는 민속촌이나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가옥 외에는 초가집을 볼 수가 없어 아쉬우나 이 시대의 흐름을 어찌 막을 수 있는가. 그 초가집에서 살았던 세대가 그저 감상에 젖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어린 유년기를 보냈던 고향집, 초가집은 결코 내 마음과 기억 속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추억을 갖게 해준 내 고향, 내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 

초가집은 매년 이영을 교체해야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완벽한 보온으로 겨울을 따듯하고 여름은 시원함을 몸으로 느낀다. 한겨울 추위에도 초가집 안으로 들어가면 한기가 싹 가시고 온화함을 금방 느낀다. 한 더위는 어떤가. 초가집의 마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은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함, 자연의 바람이다. 인위적인 온도 낮춤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거부반응을 느낄 수 없다. 겨울 방안, 한지 한 장으로 바른 창문에서도 한지 자체의 차단 능력으로 보온이 되는 것은 우리 조상의 슬기이다. 문 사이에 바람을 막기 위하여 붙여놓은 문풍지의 떨림은 추위가 한 참인 겨울에 시상을 떠올리게 하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정경, 자연이 준 것들로 이루어진 내 고향의 초가집, 내가 가장 좋아하고 꿈에서도 가끔 가보는 우리 집이다. 이런 편안하고 포근한 우리 집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 집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바로 부모님이 보이고 같이 집안에서 살았던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초가집, 우리 집이 내 마음 속 영상에 없다면 영원히 이별한 부모님은 어떻게 자주 만나 뵐 수 있겠는가.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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