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82)

얼핏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딱 맞는 것으로 착각한다. 주위에서 그냥 무심히 얻어 쓰는 것은 없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집에서 먹은 물 한 컵도 수도세를 내야 하고 밝음을 주는 전기는 공짜인가. 자동차를 조금만 움직여도 휘발유는 그만큼 들어간다. 더하여 자동차세에 면허받은 값어치를 내야 하고 아침 신는 신발은 매일매일 닳아 없어지고 언젠가는 돈 주고 다시 구매해야 한다. 교통수단인 전철, 시내버스는 요금 내지 않고 사용하면 범법자가 된다.
이렇게 주절거려보니 우리가 생활하면서 어느 것 하나 거저 얻어지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느껴진다. 아침에 책상에 앉아 켜는 컴퓨터는 자료이용부터 사용하는 거의 모든 라인은 일반적인 것 외에 구매하지 않으면 접근이 되지 않는다. 내 사무실은 어떤가. 매달 임대료에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다음 달은 내쫓겨나가는 신세가 된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거저 사용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참 야박한 세상이라 여기는데 그렇게 불평하는 지금 나는 숨을 쉬고 있다. 내 앞에 있는 무한의 공기, 산소를 빨아들여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네가 내 공기를 사용했으니 비용을 내라고 하는가. 탄생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번도 공기 사용세를 낸 적이 없다. 내가 딛고 다니는 땅은 어떤가. 내가 너를 떠받쳐 주었으니 상당한 비용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어림도 없는 수작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아침 일찍 나서는데 화단에 탐스러운 장미가 피어있다. 매혹적인 향기가 나를 즐겁게 한다. 장미가 내게 좋은 향을 선사했으니 응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얘기할까.
숲속을 거닌다. 나무들이 품어내는 피톤치드는 상쾌한 감정을 주는 차원을 넘어 우리 건강과 정신상태를 건전하게 지켜준다. 이들 나무가 어느 보상을 요구하는 것 보았는가. 아침, 지금도 혜택을 보고 있는 무한한 빛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태양은 밝음과 따뜻함, 모든 식물과 생물의 삶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인간과 동물들에게 자기가 준 것에 대한 보상을 내놓으라고 한적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한여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값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가을하늘 그 맑음을 감상하면서 음미하는 등 이렇게 무한히 공짜로 즐기고 있는 내 마음속에 이 자연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여름 늦은 밤, 하늘에 촘촘히 빛나는 별빛을 보면서 느끼는 충만함, 신비함, 그리고 무한한 우주의 영역을 마음속으로 즐기면서 관람료를 낸 적은 없다. 영화관에서 좋은 의자에 앉아 한정된 화면을 보기 위해서는 응당한 답례를 해야 한다. 하늘의 무한한 별잔치와 영화 간의 스크린 속 내용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비교되지 않는 두 상황에서 하나는 돈을 지급하지 않고 그것보다 훨씬 제한된 영상에는 상당한 예를 표한다.
오랜 가뭄에 내리는 비를 농민은 쌀이 하늘에서 내린다고 한다. 농사에 비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 비에 대하여 돈을 지불한 적이 있는가.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는 하늘을 원망하는 소리만 있지 비 온 후 그냥 다행이라는 잠깐의 마음, 그리고 그냥 자연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겨울을 지나 봄, 지나는 길에 개나리며 진달래, 철쭉, 영산홍이 잇달아 피고 조금 있으면 회양목과 쥐똥나무의 꽃이 잔치를 벌이고 벚꽃이 활짝 피면 혹 관람하는 어느 분이 감상료를 낸 적이 있는가. 그냥 공짜로 감상하고 그 향기를 즐기고 지낸다. 내 정원 과실나무에 탐스럽게 달린 과실을 따 먹으면서 그 나무에 응당한 값을 지불한 적이 있는가. 우리 시골집에 있던 살구나무는 탐스러운 과실을 숱하게도 매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일 년에 한 번 거름을 준 것 외에 살구나무에 돈을 지불한 적은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내가 받는 무한의 보살핌, 혜택은 돈으로 지불하는 것보다 거저,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것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화폐의 가치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인 공기나 물도 우리는 그냥 얻어 쓰고 있다. 그 가치는 어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무한의 자원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불평,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 우리 천박한 인간의 생활인 모양이다. 이런 물질적인 것 외에 정신적인 것은 어떤가. 기원전 살았던 여러 성인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 정신에 자양분을 흠뻑 대주면서도 그 선조들이 우리에게 금전적 요구를 한 적이 없다. 더 가까이는 부모의 무한한 보살핌을 가늠해 보았는가. 그 마음 씀을 우리는 사랑이라 표현하고 끝없는 정신적 자양분이라 여긴다.
우리는 온갖 물질적 혜택을 보상 필요 없이 받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분에 넘치는 보살핌을 받고 살고 있다. 이런 무한의 혜택에 한 번쯤은 마음을 다하여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주고 있는 혜택의 원천이 없어질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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